생명의 성령의 법 (1) (2) / 김상진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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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 (1)
오늘 목사님 설교처럼 로마서 8장 대로 생명의 성령의 법에 따라 육신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걸으면 다음 성경 구절들 처럼 그대로 된다고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약속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매일 같이 매 순간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을 미련없이 포기하고 오로지 성령을 따라 걸어가면 성령께서 이루어주실 하늘의 영광을 맛보는 아름다움과 기쁨과 감격을 성도님들과 함께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들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베드로후서 1장 2절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화평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베드로후서 1장 3절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베드로후서 1장 4절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이 약속들에 힘입어 너희가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후서 1장 5절 이것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여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베드로후서 1장 6절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하나님의 성품을,
베드로후서 1장 7절 하나님의 성품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장 8절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하면 그것들이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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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 (2)
(이 글은 먼저 제 자신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육신을 따라 걷는 우상들을 척결하고 지금도 기다리시는 성령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두 가지 큰 계획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고 칭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롭게 태어난 존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이 형성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인 9가지 특성으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Fruit라는 단수의 열매 안에 9가지 특성이 함께 있는 것임)
이를 베드로후서에는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 또는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이 약속들에 힘입어 너희가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후서 1장 6절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첫 번째 계획에서,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복음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이 자유의지로 회개하고 믿고 순종하는 상황이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두번째 계획은, 하나님의 성품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심어 주시는 일인데 이 일도 하나님 께서는 억지로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더이상 육신을 따라 걷는 삶을 포기하고 성령님께 돌아와서 진심으로 성령님을 따라 걷기를 원할때 이루어 주십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기를 결심하고 삶 가운데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우상들을 제거했을때 비로서 성령님은 거룩하신 일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만들어 주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결코 공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7절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참으로 복종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우리가,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절대적 방해 요소인 육신을 따라 걷는 삶을 먼저 우리의 자유의지로 정리해야 합니다.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외에 우리의 탐욕과 정욕으로 인한 우상(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들을 제거하는 결정을 하고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고 성령님께서만 내안에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성령의 열매 곧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어 주시도록 이제는 육신을 따라 걷는 삶을 중단하고 성령님께서 거룩한 일을 하시도록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아니하여 성령을 따라서 걷지 않고 계속해서 육신을 따라 걷는다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삼위알체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는 많이 슬퍼하시고 우리가 스스로 돌아올때 까지 또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리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오직 성령님께서만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성령의 열매가 만들어지는 고귀하고 거룩한 일을 마다하고 이를 가로막고 있는 비교할 수도 없이 하찮은 우상숭배 같은 세상 욕심을 추구하며 사는 일은, 그리스도인 이라면 반드시 먼저 정리하고 미련없이 버려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육신을 따라 걷는 우상을 쫓는 삶을 포기하고 우상을 내버리고 흔적도 없이 불살라 버리는 일을 먼저하고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육신을 따라 걷는 습관을 정리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사용하지 않은 결과로 육신을 따르는 우상 숭배의 일을 평생 포기하지 못함으로서 성령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내안에 이루어지는 고귀한 은혜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후회할 일이 또 어디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모습 중에 하나는 바로, 구원받은 후에 신앙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특별히 범법하는 일을 하지 않는한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정확한 사실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특별한 범법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통하여 육신을 따라 걷는 수많은 우상숭배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5절 너희가 이것을 아노니 즉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 유업도 갖지 못하느니라.
구원과 성령의 열매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 이루실 수 있는 영역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하고 진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구할때 우리를 늘 기다리시는 성령님께서만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영적인 창조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성령의 열매도 성령님께서 필수적으로 이루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하나님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는 전체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 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생명의 성령의 법을 잘 이해하여 결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놓치지 않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가득 맺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자유의지를 사용하고 또한 믿음으로 성령님을 따라 걷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It is not the end. It is not even the beginning of the end. But it is perhaps the end of the beginning.”(Winston Churchill)
끝이 아닙니다. 끝의 시작조차 아닙니다. 하지만 어쩌면 시작의 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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