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낙스의 성령의 열매 (9. 절제 Temperance) 독후감 / 김상진 형제님 > 교제와나눔

본문 바로가기

교제와나눔

제임스 낙스의 성령의 열매 (9. 절제 Temperance) 독후감 / 김상진 형제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KKBC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10-28 07:38

본문

성령의 열매<9.절제 Temperance>

참고 : 이 글을 쓰면서 저자인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글들이(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문제점들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잘 표현해 주어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문장을 그대로 소개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부드럽게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들은 한글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로 통일하였습니다.

<9.절제 Temperance>

갈라디아서 5장 24-25절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라.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단순히 “참는다”는 의미보다 성령님의 통치 아래서 자신의 욕구·감정·말·행동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다 성령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확고부동한 진리입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성령님 안에서 걷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걷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이 단지 하늘나라로 가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로 가는 인생 여정 중에 우리를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구원이란 우리의 인생이 끝났을 때 우리가 어디에 도달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하늘나라로 가는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갈라디아서 본문은 우리로 육신적으로 살지 말고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내어드려 성령님께서 우리 자신을 통제하시도록 하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대해 이미 성경을 통하여 자세하게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NASV나 NIV 같은 번역본에서는 절제(temperance)라는 단어를 자기통제(self-control) 라는 단어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말씀은 오히려 자기통제(self-control)를 버리고 성령통제(Spirit-control) 로 나아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self-control)대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 하나님께서 통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통제를, 절제(temperance)라고 합니다.

절제(temperance) 라는 단어는 기질, 성향(temper)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의 생각 혹은 마음(mind)을 어디에 두느냐(disposition)에 따라서 절제가 필요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마음의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 혹은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생각을 올바른 곳에 올려놓기를 바라고 계시며 우리의 머리를 제대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둔하게 한다든가, 생각을 중단시킨다든가, 중립(neutral) 상태로 만들어 멍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납니다.

그렇다면 절제(temperance)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와 열정을 지속적으로 온건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뭐든지 하고 사는 사회, 그것이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이런 본능을 절제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절제란 욕구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요, 인내하는 것이요,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절제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제한을 가하는 것이며 우리의 열정(passion)을 가라앉혀 주는 것입니다. 본능적 욕구에 쉽게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통제하고 계신 상황이 아닙니다.

잠언 16장 25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6절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러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기도하다가 생각이 딴 곳으로 흘러가 버리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도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때 얼른 그 생각을 사로잡아 주님의 통제하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절제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기도도 성경 읽기도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통제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장 25절에서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의와 절제와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강론하였고 벨릭스가 떨며 응답하되, 이번에는 네 길로 가라. 내게 적당한 때가 생기면 내가 너를 부르리라. 하였는데, 여기서 사도 바울이 강론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관한 세 가지의 내용을 보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되며, 의롭게 되지 못한 자는 백보좌 심판 때 불못으로 던져질 것인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 하나가 보입니다. 의와 다가올 심판 사이에 놓여 있는 절제(temperance)라는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들이 다가올 심판 때까지 우리의 생각을 성령님의 통제하에 두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절제하는 삶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욕망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악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습니다. 

절제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세상의 욕심, 죄, 악 사이에 둘러치신 성벽과 울타리인 셈입니다.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성령님께서 통제하시도록 의지를 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기 때문이라.

고린도후서 10장 5절 우리는 상상하는 것들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멍한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스타일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온건하고 절제된 상태로 유지하여 그 생각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욕심을 제한하고 열정을 통제하며 생각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그것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직 우리 자신을 성령님의 통제하에 내려놓도록 하옵소서.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내어드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성령님의 통제하에 절제된 삶을 살고 있음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빌립보서 4장 5절 너희의 절제를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이 계시느니라.

디도서 2장 11절-12절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우리를 가르치시되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