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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무오와 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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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KBC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7-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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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축자적으로 영감을 받았다. (Verbal Inspiration=word for word)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류가 없고, 완전하다고 말씀하셨다. 전통적으로는 모세, 대언자들, 사도들과 사도들의 측근들이 쓴 “원본”에 해당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그 말씀들은 축자적으로 (즉 단어 하나하나) 영감을 받았기에 더욱 그렇다. 마태복음 4:4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모든 말씀이란, every word이며 “각각의 단어,” “하나하나의 말”이란 뜻이고 그것이 바로 축자(逐字, 쫓을 축+글자 자)영감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떤 학설이 아니라, 성경 그대로 성경의 교리를 표현한 것이다. 나는 축자영감”설”이란 말을 결코 쓰지 않는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거역하는 태도와 행동이다. 성경의 축자영감이 맞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을 3번 받으셨을 때, 모두 신명기의 말씀들을 인용하시면서 물리치셨다. 자신의 말씀으로도 능히 물리치실 수 있지만, 기록된 말씀을 인용, 적용하셨다!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육성으로 직접 하신 말씀보다도 더 확실하다. 그래서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하신 말씀을 들었는데, (대단한 특권), 그보다도 “더 확실한 말씀”이 바로 “기록된 말씀”이라고 강조하였다. (벧후 1:17, 19). 은사주의자들의 속임수에 주의해야 한다.   

축자영감은 “개념영감(Dynamic Inspiration)”과는 반대되는 성경적 표현과 교리이며, 기계적인 영감, 구술영감(dictation)이 아니라 유기적인 영감, 즉 살아있는 영감, 권능의 말씀이다 (히 4:12). 축자영감을 기계적 영감과 구술영감(일종의 받아쓰기)로 공격하는 것은 좌파기독교 신학자들, 즉 자유주의자들이 흔히 공격하고 비난하는 수법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기록자들을 완전히 기계화 해서 그저 받아쓰게 하셨다고 축자영감을 공격하기도 한다. 원래는 자신의 영원하신 말씀을 쓰게 하시려고 그런 기자들을 준비케 하시고, 그들의 배경, 성격, 교육, 문화, 어휘 등을 사용하셨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한 위에서 말한 개념영감이란, 하나님께서 기자들에게 어떤 “개념이나 사상, 아이디어만” 주시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구성하고 기록하도록 하셨다는 주장이다. 마태 4:4의 예수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contain)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다.

2. 성경기록자들은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라고 말씀하시는데, 유감스럽게도 개역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미흡한 번역을 하였다. 이 원어나 KJV 영어성경에서는 분명히 “θεόπνευστος=분사= theo-pneustos=하나님+영감” 즉, 하나님의 “영감”이라고 하셨는데 “감동”이라고 했고, 결국 모든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에서는 조직신학을 배울 때, 영감이 맞다고 교정해준다. 신학교가 성경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신학교를 교정해주어야 한다. (개역성경은 상당히 정확하고 탁월한 번역성경으로서 좋은 성경이지만, 원문의 문제와 번역의 오류가 여기저기에 있다).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고, 벧후 1:21에서는 거룩한 “기록자”들이 성령님께서 “감동” 혹은 “움직이게 하심”을 받았다. 이것은 서로 다른 그리스어이다. 이 “감동 혹은 움직이게 하심”이란 말은, φέρω 인데,17, 18절, 21절에 두번 나오고, 주된 뜻 중의 하나는 “움직이게 하다, 이끈다”는 뜻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돛단 배가 가듯이 성령님께서 주관하시고 감동하시며, 감독하시고 부시는 대로 이끌여 기록하게 하셨다. 성경 기록자들은 거룩한 사람들이었고, 우리보다 비교가 안되게 거룩한 사람이었지만, 완전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성경(기록)은 “영감”을 받았고, 성경기자들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 성경적 바른 표현이다.

3. 총체적 영감


이것은 딤후 3:16절의 말씀처럼 “모든 성경기록”의 뜻은 어떤 특정한 구절이나 부분만 하나님의 영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절까지 모두 똑같이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누가 11:50, 51에서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구약 전체를 하나님 말씀으로 그 영감과 권위를 인정하셨다. 유대인 성경은 예수님 때나 지금도 창세기가 첫째 책이고, 역대상하기가 마지막 책이다. 요아스왕의 사촌이었던 제사장 사가랴는 무죄한 피를 흘리면서 죽었는데, 그 피값을 신원해 달라고 애절한 기도를 드렸다. 여기 사가랴는 대언자 스가랴가 아니다. 유대인의 구약성경은 우리 성경과 달리 39권이 아니라 24권이 그 순서도 다르게 되어 있고 사무엘상하가 한 권, 열왕기상하가 한 권, 역대기상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마지막 책이다. 눅 24:44에서 예수님께서는 결국 창세기부터 마지막 역대상하기 전체가 자신에 대한 고난과 죽음, 부활을 말씀하고 있다고 두 제자를 책망하셨는데, 이는 또한 구약 전체를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또한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16에서 바울의 서신서들을 “성경기록”이라고 그 영감과 권위를 인정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중에 성경을 본인께서 기록하지 않으셨지만, 신약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요한 14:26, 16:13–15). 즉, 결론적으로 구약과 신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인정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 그것을 마감한 것이며 (22:18, 19), 모든 부분이 영감을 받은 것이다. 즉, 요한복음 3:16이나, 예를 들면 레위기 3:16이나 모두 똑같이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며, 이것을 총체적(Plenary) 영감이라고 부른다.

4. 성경의 무오(無誤 Inerrancy)와 무류(無謬 Infallibility)


축자영감은 성경이 기록되는 결과와 관련되어 무오를 동반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의 그분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 말이나 내용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서는 진위 여부에 대하여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역사적 기록, 과학적 기록, 숫자적 기록은 그 목적에 따라 때로는 개괄적 표현을 하기도 했고, 아주 정확하게 기록도 하였는데, 많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이 이브에게 한 말들은 거짓말이었다. 금지된 과일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은 분명히 거짓이었다. 축자영감과 “무오”라는 교리는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 거짓말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포함되도록 “빠짐없이, 더할 것도 없이, 완전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오와 무류는 거의 동의어지만, 조직신학에서 구별하기도 한다. 무류라는 말은 그 내용이 분명히 믿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이란 뜻이다. 구원, 성화, 사역, 역사, 교육, 가정, 교회, 국가, 경제, 사회 등에 있어서 믿을 수 있는 말씀이다라는 뜻이다. 그 반면에 무오라는 뜻은 비록 극소수의 거짓말이나 세속적 인용이 있을 때 (행 17, 딛 1:12), 그 신빙성이 없거나 거짓이라도 성경 66권에 포함되도록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 유명한 “성경의 무오에 대한 시카고 신앙선언문 (복음주의자들이 1978년도에 연합하여 선언)”에서 잘 구분하여 표현하였다. 무류라는 것은 원래 “교황의 무류성” 즉, 교황이 공식적 선언에서는 오류가 없다는 뜻인데, 신성모독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성경의 무결(無缺=Integrity, Trustworthiness)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기에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의 원본의 총체적 축자영감과 성경 무오와 무류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성경적 교리이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가장 강력한 무기와 탁월한 연장이기 때문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믿음의 집을 건축하는데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니면 패배와 탈락, 실격, 낭비되는 인생과 사역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성경의 보존, 사본, 역본에 대하여 말하지는 않았다. 다른 기회에 말하고자 한다. (이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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